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그냥 재미삼아 가끔씩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중학교 1학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교회 다니는 걸 즐기면서 학생회 임원으로 열심을 다해 교회에서 봉사를 했습니다. 시골교회라 주일에 시간을 알리는 종을 치는 것부터 주일학교 보조교사, 학생회 임원, 낮 예배 찬양대로 섬기면서 나름 교회에서 인정받는 학생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인정받는 학생이었지만 아버지의 빈자리로 인해 자존심은 굉장히 강하고 고집도 있어 목사님이 보시고 불쌍히 여겨 상담도 해주시고 진로에 대해서도 염려해주시면서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주셨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누구보다도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주일 점심도 굶어가면서 학생들 심방도 가고 철야기도도 하면서 나름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신학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의 생활은 평신도보다 못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선배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어설픈 민중 신학이나 해방신학을 조금 접하면서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교회 생활은 등한시 되며 예배 때마다 하나님은 안계시다고 생각하며 슬픈 마음으로 예배당 바깥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신학대학교 1학년 말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같은 학년의 연장자 되시는 전도사님을 따라 신학교 친구들과 함께 마지못해 1박2일 동안 기도하러가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때 ‘그래 한번 가보자’ 정말 계신지 안계신지 기도나 한번 해보자하는 마음으로 따라갔습니다. 안동에 있는 아주 작은 시골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에 계시는 여전도사님과 인사하면서 그 교회에서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너무나 정확하게 알아보시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친구들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의 마음속까지 다 알고계실까? 그 순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베소서 4:4,5,6 말씀처럼 성령도 한분이요 주도 하나도 믿음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이시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에게 요한복음을 계속 읽으라고 말씀하셔서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살아계심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도 계속 말씀과 기도를 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나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게 되었고 성실하게 주의 일들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에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때로는 어떻게 하면 변증법적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책도 읽어보면서 준비해봤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확신반 성경공부를 하면서 함께 공부했던 교인들조차도 행위를 통해서 아니면 이적이나 감정적인 부분을 통해서 구원의 확신을 인정할려고 하는 것들을 보면서 사실인 말씀이 더욱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확신 반을 통해 하나님의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이 아주 크게 와 닿았습니다.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저는 구원의 확신을 증거하는 말씀에 믿음의 뿌리를 두는 것이 가장 흔들림 없다는 것과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믿는 자로서 당당함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집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강명자 목사(확신반 3기)
|